퇴직금과 퇴직연금은 같은 제도가 아니다
많은 직장인이 "퇴직금 = 퇴직연금"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셋 다 다른 제도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2조는 "퇴직급여제도"를 퇴직금제도와 퇴직연금제도(DB·DC·IRP)로 구분한다. 공통점은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 평균임금 30일분 이상을 퇴직 시 지급한다"는 최저 보장이다. 차이점은 적립 방식, 운용 주체, 부도 시 안전성, 세제 혜택이다.
1. 퇴직금제도 (사내 적립·일시금 지급)
가장 전통적인 방식이다. 회사가 별도 사외 적립 없이 장부상 퇴직금 충당부채로 잡아두었다가 근로자가 퇴직할 때 일시금으로 지급한다. 금액은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 × 30일 × (근속일수 ÷ 365)로 계산한다. 단점은 명확하다. 회사가 부도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없거나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일부만 받을 수 있다. 이런 위험 때문에 정부는 2012년부터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점차 의무화하고 있다.
2. DB형 퇴직연금 (확정급여형)
금액 산정 방식은 퇴직금제도와 동일하다. 즉 평균임금 × 30일 × 근속연수다. 다른 점은 회사가 매년 일정 금액을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한다는 것이다. 운용 책임은 회사에 있고, 운용 수익이 좋으면 회사가 적립 부담을 줄이고, 손실이 나면 회사가 보충해야 한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받는 금액이 보장되므로 임금이 꾸준히 오르는 회사에 다닐수록 유리하다.
3. DC형 퇴직연금 (확정기여형)
매년 회사가 해당 연도 임금총액의 1/12 이상을 근로자 명의의 개인 계좌(IRP)에 적립한다. 적립금의 운용 책임은 근로자 본인에게 있다. 예금·채권·주식형 펀드·ETF 등을 직접 선택해 운용하며, 운용 결과(수익 또는 손실)에 따라 최종 수령액이 달라진다. 임금이 매년 오르지 않거나 임금피크제로 후반부에 임금이 깎이는 회사라면 DB형보다 유리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임금이 매년 큰 폭으로 오르는 회사라면 DB형이 유리하다.
구조 비교 한눈에
| 구분 | 퇴직금제도 | DB형 연금 | DC형 연금 |
|---|---|---|---|
| 지급액 산정 | 평균임금 × 30일 × 근속연수 | 매년 임금총액 1/12 적립금 + 운용수익 | |
| 적립 주체 | 회사 사내 | 회사 사외 | 회사 사외(개인 계좌) |
| 운용 책임 | 해당 없음 | 회사 | 근로자 본인 |
| 부도 시 안전 | 위험 | 안전 | 안전 |
| 중도 인출 | 법정 사유만 | 원칙 불가 | 법정 사유만 |
| 이직 시 | 지급 후 종료 | 이전 절차 필요 | IRP로 그대로 이전 |
| 유리한 조건 | — | 임금상승률 ≥ 운용수익률 | 임금상승률 < 운용수익률 |
실제 사례로 비교
사례 A. 임금 매년 5% 상승, 10년 근속
입사 시 연봉 4,000만 원에서 시작해 매년 5%씩 올라 10년 후 약 6,500만 원을 받는다고 가정하자. DB형의 경우 마지막 평균임금 기준 약 5,415만 원의 퇴직금을 받게 된다. DC형은 매년 그 해 연봉의 1/12을 적립하므로 누적 적립금이 약 5,000만 원 + 운용수익이다. 연 4% 정도의 안정적 수익률을 가정하면 약 6,100만 원 수준에 도달한다. 이 경우 DC형이 약간 유리하지만 차이가 크지 않다. 연 6% 이상의 수익률을 꾸준히 낼 수 있다면 DC형 우위가 분명해진다.
사례 B. 임금피크 적용, 마지막 5년 임금 30% 감액
15년 근속자가 정년을 앞두고 임금피크에 들어가 마지막 5년 동안 연봉이 30% 줄어든다고 가정하자. DB형은 마지막 3개월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므로 퇴직금이 큰 폭으로 줄어든다. 반면 DC형은 임금이 높았던 시기에 적립한 금액이 그대로 유지되므로 손해가 거의 없다. 이런 회사에 다닌다면 가능한 한 임금피크 진입 전에 DC형으로 전환하는 것이 유리하다. 단, 회사가 DC형을 도입하지 않은 상태라면 노사 협의가 필요하므로 미리 노조나 인사부서에 확인해야 한다.
사례 C. 5인 미만 사업장, 잦은 이직
5인 미만 사업장은 퇴직연금 의무 도입 대상이 아니어서 여전히 퇴직금제도(사내 적립)인 경우가 많다. 이직이 잦은 직장인은 회사가 퇴직금을 지급할 여력이 있는지 매번 확인해야 한다. 만약 폐업·부도가 발생하면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최대 3개월분의 임금과 3년분의 퇴직금까지만 보장받을 수 있다(임금채권보장법 제7조). 이런 환경이라면 가능하면 DC형 도입을 요구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매년 퇴직금 충당 여부를 회계 자료로 확인해 두는 것이 안전하다.
세제 혜택은 거의 동일하다
퇴직금·DB·DC 모두 일시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가 부과된다. 근속연수공제·환산급여공제 등이 적용되어 일반 근로소득세보다 실효세율이 낮다. 예를 들어 10년 근속 후 5,000만 원 퇴직금을 받는다면 퇴직소득세는 약 100만 원 안팎이다. DC·IRP를 연금으로 수령하면 세금이 추가로 30~40% 절감되는 연금소득세 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연금 수령 기간이 10년 이상이면 절세 폭이 더 커진다.
결론: 회사 환경이 유불리를 결정한다
DB와 DC 중 무엇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회사의 임금 상승률, 정년·임금피크 정책, 근로자 본인의 운용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확실한 것은 사외 적립이 안 되는 사내 퇴직금제도보다는 DB든 DC든 퇴직연금이 안전하다는 점이다. 본인의 상황을 점검할 때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면 된다.
- 회사 임금이 매년 꾸준히 오르고 있는가? → 그렇다면 DB가 유리할 가능성
- 임금피크 또는 직급 정체가 예상되는가? → 그렇다면 DC가 유리할 가능성
- 본인이 직접 자산을 운용할 의향과 시간이 있는가? → 그렇다면 DC + IRP 활용
정확한 퇴직금 추정치를 먼저 확인하고 싶다면 아래 계산기를 활용하면 된다. 평균임금과 통상임금 중 더 큰 값으로 자동 적용되므로 회사가 임의로 낮게 산정하는 경우를 검증할 수 있다.